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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0 17:12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떠났고 그 과정에서 만주군 관련 친일 경력이 있던 이준은
중국 베이징 국학대학 정치학과를 졸업 합니다.
이준은 만주 생활 시절에 배운 중국어 실력으로
6.25 전쟁 때 통역장교로 복무했고
뛰어난 중국어와 영어 실력으로 중앙정보부 창설요원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군과의 인맥을 쌓아 전역 후에는
미군 군납 건설과 전기공사업을 주로 하는 회사를 차리며
부를 축적하며
상호를 삼풍건설산업으로 바꾸면서 건설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 합니다.
그리고 을지로에 삼풍상가 , 여의도 순복음교회,
청계천 평화시장 공사를 하며
3대가 먹고 살아도 남을 만큼의 부를 축적하며
본인의 숙원사업이자 당시 한창 유행이였던 백화점 사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아파트를 지으려고 매입했던 서초동 부지를
백화점 부지로 용도를 변경하는데
용도변경을 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에 거액의 로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7년 드디어 백화점을 착공하여
1989년 개장을 하게 됩니다.
백화점의 이름은 삼풍백화점이였는데
1980년대 신흥 부촌으로 명성을 날리던 강남구와 서초구
지역 고객들을 끌어모으게 되며
삼풍백화점과 함께 들어선 삼풍아파트는 한국 최고 분양가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뿌리며
강남구/서초구 지역에서 인기 좋고 집값도 높은 아파트 단지가 됩니다.
아파트와 백화점으로 돈을 쓸어모으며
이준의 삼풍그룹은 당당히 대기업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고
이준은 재벌 수장의 반열로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삼풍백화점은
기둥의 폭을 줄여 철근 등 자재를 작게 투입하는 등
부실하게 시공되었으며
삼풍백회점 붕괴를 가속화시킨 2층에 삼풍문고라는 이름의 서점을 입점해 백화점의 붕괴를 앞당겼고
결정적으로는 백화점 옥상에 위치해 있던
87톤 가량의 에어컨 냉각탑과
냉각수 이동과 운용이 붕괴에 치명적으로 작용했고
5년 반 만에 붕괴 사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백화점 붕괴 당일 날 이준회장을 포함한 경영진들은
백화점 B동에서
보수 대책회의를 하고 내린 결론은 영업 중지 없이
보수 공사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였고
회의를 마치고 몇시간뒤 백화점 A동이 천장까지 가라앉기
시작하고 가스가 새며 탕 하는 소리와
흙먼지가 뿜으며 5분만에 백화점 A동이 주저앉아
샌드위치 처럼 겹겹이 샇이게 되고
대부분의 사상자들은 저 틈새에서 발견이 됩니다.
붕괴 이틀 후 이준 회장은 체포가 되었고
7년6개월동안 징역을 살고 나옵니다.
그리고 80세가 넘어 만기출소를 하는데
출소 당시에는 추징금으로 전재산을 모두 잃어
빈곤하고 병에 찌든 최후를 보내다가 사망 하게 됩니다.
백화점 붕괴당시 이준회장의 맏며느리는 A동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다 백화점이 붕괴되어
매몰되었다가 14시간만에 구출이 되기도 하였고
삼풍의 사장이였던 이준회장의 차남 이한상 사장은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출소 후 선교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몽골로 출국 하여 생활을 하다
현재는 러시아에 거주 하고 있습니다.
그외 삼풍백화점 붕괴시 가장 큰 이슈는 절도 였습니다.
무너지지 않은 B동의 슈퍼마켓 계산대를 털거나
A동의 무너진 잔해 더미 속을 파내며 희생자들의 소지품이나 매몰된 상품들을 훔치는 등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 헤매는 추태를 보이는 장면이
국내외 뉴스에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삼풍 이름 걸고 있는곳들도 있죠.
삼풍치킨이 대표적..
윤통 사는 아크로가 삼풍자리 아닌가 싶은데..